마~니 마~니

Tory&Mani's St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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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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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happymani.com
Subject  
   [想] 정전

"서울에서 떨어진 시골마을에 가서 살아도 살 수 있겠어?"
라는 말을 가끔 주고 받을 때가 있다.
거리적인 단절과 심리적인 단절,
그리고 물질적인 단절을 극복해 낼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일 텐데
난 당연히 그럴 수 있으며, 여건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사람들 만나는 것 보다는 혼자 조용히 시간보내는 걸 더 좋아하고
발품팔아 일상적인걸 구경하러 다니는 건 좋아해도
도심의 백화점 쇼핑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 생각으론)난 자연친화적인 사람이고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실히 하고있고
순박한 사람들을 좋아하고(아직도 시골사람들 성향은 순박하다 생각하므로..)
노인과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낯선 곳에 대한 적응력도 좋은편이고
혼자 놀기도 잘하며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어느곳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건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글, 독서, 그림, 사진, 요리..
등의 취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시골마을에서도 잘 살 수 있을거라 장담하면
다들 내가 너무 시골생활에 대해 감상적으로만 생각한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고립된 곳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자신하고 있던,
고립된 곳의 생활을 동경하던 내가 오늘 절실히 깨달은건
난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한 시도 살 수 없는
심리적인 단절감을 잘 극복해 내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아파트 단지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총 6시간 30분동안
전기공사를 위해 강제로 정전을 시킨것이다.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TV, 라디오, 인터넷은 물론 전등도 켤 수 없다.
오늘따라, 폭우가 쏟아져서 하늘은 시꺼멓고
천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대낮에도 어두웠는데
불 들어 오지 않는 어두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다.

전기불로 점화되는 가스렌지도, 전자렌지도 쓸수 없으니
냉장고에 들어있던 찬밥을 데워먹을 방법이 없어서 끼니를 걸렀다.
배고프다는 생각은 전혀 안드는데 어둠속에서 누워있으려니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 적막이 감돌았다.
모든게 조용한 듯 느껴졌고, 그러고 보니 내 마음이 불안했다.
내 일상은 조용하고, 난 그 조용함을 즐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난 일상의 소음 속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일 뿐이다.

원래 TV를 보던 시간, 라디오를 듣던 시간, 인터넷을 서핑하던 시간,
점심을 먹는 시간, 빨래하는 시간,
그러다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하는 시간...
이런 시간들에 대한 개념이 한꺼번에 무뎌져서
마침내 4시경 전기가 들어왔을 때,
난 원래 이 시간에 무얼했었을까, 4시가 되면 무얼 할 차례지?
하며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정전된 그 시간 동안 나는 혼돈된 시간속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자 모든것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사람들의 소음도 들려오고,
바깥에서 차들도 분주히 다니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모두들 나처럼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해방 나팔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사람들 처럼만 보였다.


내가 시골에서 산다는건 무의식중에
인터넷이 연결되는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나 보다.
아무리 내향적이고, 혼자있는 걸 좋아한다 해도
난 끊임없이 인터넷을 붙들고 세상과 소통하려 했었던 것이다.
TV나 라디오가 없어도 최소한 인터넷 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과 소통하기엔...
그러나 그것마저 없으면 그 생활에 내가 잘 적응할지 장담할수가 없다.
오늘 정전의 맛을 본 이후로는...

역시 난 인간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서 모른척 떨어져 살 수가 없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으면
총 길이 3,360km의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몇 달에 걸쳐 종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똑같아만 보이는 산의 연속.
수풀과 동물과 암벽과 하늘을 가린 나무들.
사람이라곤 거의 만날 수도 없고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은 숲속을 종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못하겠다.
6시간 30분 동안의 정전속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가
어떻게 몇개월을 버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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