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여행 제부도

 

1999년. 20세기 마지막 지는해.

Tory는 21세기 첫 날을, 동해안에서 Mani와 함께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Y2K 문제로 모두 비상대기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건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래서 Tory가 생각한 대안은 1999년 12월 마지막 주에 서해안에서, 떨어지는 저녁해를 보고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서해안에 위치한 제부도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 한잔 하던 중, 현성이가 추천해 준 곳이 바로 제부도였거든요. 하루에 두 번씩 바다 길이 열리는 것이 신기하고, 바지락 칼국수, 조개구이등 먹거리도 맛있다고 적극 추천하니 고민 할 것도 없이 목적지를 제부도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말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또한 주말에는 워낙 관광객들이 많아서 차도 밀리고 북적거린다기에, 둘다 월요일에 휴가를 내기로 했습니다. 물론, 월요일에 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전에 물때를 알아보고 갔고, 또 그 곳에서 무엇을 할지를 정하고 갔기 때문에 시간조절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의 물 때는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아침에 물이 빠졌다가 저녁쯤 물이 차니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나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여행기는 1999년도에 썼지만, 추후 2002년도에 직접 찍은 제부도 사진을 추가했습니다.)

가는 방법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갈에서 안산쪽으로 빠져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나오는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타면 제부도에 갈 수 있습니다.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제부도 입구에서는 1인당 입장료를 받습니다. 쓰레기 처리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빠진 제부도. 매바위까지 걸어들어 가다.

정오에 약간 못미치는 시간에 제부도에 도착했습니다.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일러서 우선 섬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죠.

제부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큰 바위가 있어서 그것을 먼저 보러갔습니다. Tory가 보기엔, 둘러봐도 그 바위 밖에는 구경할 거리가 없었던 것 같네요. 그 바위의 이름은 매바위. 물이 빠지면, 바위까지 걸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작은 돌들로 길이 울퉁불퉁해 조심스럽게 걸어야 합니다.

Tory는 Mani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은 것은 이때가 처음인 것 같네요.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았으므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물 빠진 자갈길을 걷는 것도 재밌고 바위도 멋졌지만, 그것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은 자갈들에 붙어 있는 "굴"을 따먹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산 굴

길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땅바닥을 헤집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한 아주머니께서, 굴이 있다는 것과 따먹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생각보다 굴이 꽤 많았습니다. 자갈과 굴껍질 구분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싱싱한 굴을 따먹는 재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굴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바닷물에 살짝 찍어 먹으면 간이 딱 베어 아주 맛있습니다. (사진은 직접 캐낸 굴을 즉석에서 껍질까는 동네아저씨)

Tory는 굴을 싫어하는데, 그곳에서 먹은 굴은 자연산이라 먹기에 부담없는 크기에 맛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그곳에서 나왔는데, 길이 갯벌이라서 Mani의 신발이 좀 더러워 졌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Tory가 없어주었을텐데, 그 때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는군요. ^^

바지락 칼국수

점심은 바지락 칼국수를 먹기로 했습니다. 갯벌 바로 앞에는 바지락 칼국수집이 아주 많았고, 그곳에서도 예외없이 호객행위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집을 갔는데, 칼국수를 받아보고는 우리가 식당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수대야 같이 아주 큰 그릇에 2인분이 나왔는데 국물의 양이 끝내주었습니다. 싱겁고 맛도 없는 국물을 무지하게 많이 줘서 다 먹느라고 혼났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무지하게 실망한 점심이었습니다.

조개구이

점심을 먹고난 후,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조개구이를 안주삼아 소주를 한잔 하게 되었습니다. 갯벌 가까이는 조개구이 하는 포장마차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Tory는 원래 조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Mani가 해산물을 좋아해서 같이 먹었는데 소주 안주로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습니다. 그리고 포장마차 안에서 화로에 조개를 구워먹는 기분 또한 아주 좋아서, 둘이서 소주 2병을 먹었습니다.

쉼, 그리고 일몰

술이 조금 올라서 몸이 노곤해 지더군요. 그곳을 나와 차를 타고 제부도 안을 뱅뱅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드물고,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한가한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음악을 틀고, 의자를 뒤로 제껴놓고 누웠습니다. 그 때 김광석 2집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Mani는 피곤했는지 그냥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Mani가 추울까봐 외투를 덮어주고  Tory는 Mani의 얼굴을 바라보았죠. 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옆에는 Mani가 고이 자고 있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Mani의 이마에 살짝 뽀뽀 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Mani가 잠에서 깨어난 건, 아니 Tory가 너무 심심해서 Mani를 깨운 건 오후 4시정도.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수평선 너머로 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자판기 커피 한잔씩 뽑아들고 바다에서 노을을 감상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이제 점점 물이 차 오를 시간이었습니다. 섬에 갇히기 전에 그곳에서 나와야 했죠.

제부도 밖으로 나오다. 그리고 <마술피리>로...

물이 조금 많이 찼으면, 나오는 길에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을 텐데 물이 별로 차지 않아서 그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원래 제부도를 나와서는 해운산에 오를 계획이었습니다. 해운산에서는 제부도의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금방 어두워 져서 해운산에 올라가는 건 포기하고 다음 코스인 문제의 장소(?) "마술피리"라는 까페에 갔습니다.

Tory는 지금도 마술피리를 생각하면 조금 겁이 납니다. 산 속에 있는 까페였는데 손님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명은 어두웠고, 특이한 장식물 진열장, 무거운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아주 큰 오디오와 스피커, 장작이 타고 있는 벽난로는 카페를 따뜻하게 느낄 만한 소도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괴했습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있던 주인아저씨는 말을 아끼며 친절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음침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 들어갈 때부터 느낌이 별로 안좋았는데 화장실을 갔다오고 나서는 겁까지 났습니다.화장실 벽엔 낙서가 아주 많았는데 어두운 조명과 어우러진 낙서가 무섭게 느껴졌으니까요..Mani는 연방 분위기 좋고 아저씨도 좋아보인다고 했지만 사실 Tory는 한시라도 빨리 거기서 나오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Mani는 "마술피리"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하지만, Tory는 절대 사양입니다.  사실 그때 Tory는 이 까페의 주인 아저씨가 무슨 동화 같은데서 나오는 마녀나 귀신같은 사람이어서 우리가 그런 것에 홀려 버리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거든요. 어쨌거나, 아주 짧은시간 그곳에 머무르고 도망치듯이 나왔습니다.

화성이 주는 공포

마술까페에서 나온 이후로는 공포영화의 연장이었습니다.

무서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차에 무슨 물체가 쾅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차를 세우고 살폈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얼른 차를 몰고 다시 달렸습니다. 외길에 가로등도 별로 없는 어두운 곳, 저 멀리 무서운 표정의 사람들이 한무리 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더 기분 나쁜 건 그 곳이 바로 연쇄살인 사건 장소인 화성이었다는 겁니다. 암튼 기분이 무지하게 나쁜 곳이었습니다.
빨리 화성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고 조금 빨리 차를 몰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 왔고, 우리는 놀랜 가슴을 달래고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자주가던 천호동의 전망좋은 까페 "루즈"에 가서 우동을 먹었습니다.

루즈의 우동은 참 맛있습니다.

Mani는 우동에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했었지만 말이죠.

지금 제부도 여행을 정리하다 보니, 그 때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에 들렀던 마술피리와 화성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연인끼리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에필로그

제부도에 놀러와서,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모르고 놀다가 하룻밤 새고 정말 연인 되어 나가는 커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하룻밤을 샌건 아니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는 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부도... 멋진 곳입니다. 행복한 기억도 가득한 곳입니다.

하지만, 끝에 마술피리에 갔던 건 정말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제부도에 대해 알아야 할 사항

제부도에 가다가 생각을 해보니까 Tory가 어제 은행에서 돈을 찾는다고 생각만하고 돈을 찾지 못해서 주머니에 돈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Mani에게 “제부도에도 은행이 있겠지”라고 했는데 Mani가 인터넷에서 뽑아 온 자료를 보고는 “제부도에 없는 것들. 은행, 약국, 주유소…..”라고 하면서 제부도에 은행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Tory는 Mani가 약올리려고 거짓말 하는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안쓰고 중간에 은행이 나와도 다음 은행에서 찾지 하면서 그냥 지나갔는데 정말로 제부도에는 은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Tory는 돈이 거의 한푼도 없었고 Mani가 계속 계산을 했습니다.

제부도에 가시는 분들은 은행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고 꼭 현금을 준비해 가십시오!